최근 논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을 둘러싸고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경제계를 중심으로 소송 남발 가능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으며, 미국식 제도의 맹목적 도입에 대한 비판, 제도의 완성도 문제, 조항의 모호성, 그리고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 가능성 등 여러 측면에서 우려가 표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법 개정의 실제 내용과 그 영향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우려는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경제계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무분별한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현행 제도와 법원의 역할, 그리고 개정안의 실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재도 주주들은 이사의 불법행위나 임무해태에 대해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상법 개정이 소송의 요건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소송 유형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이사가 의사결정을 할 때 고려해야 할 기준을 더 명확히 하는 것뿐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명확한 기준의 제시는 불필요한 소송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현행법은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무엇이 회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정안은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직무를 수행하고,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는 이사들에게 의사결정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이사회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주주의 이익을 어떻게 고려했는지 문서화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나중에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자신들의 결정이 적절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우리 법원은 전통적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존중해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면, 설령 그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입니다. 상법 개정으로 이러한 기본 원칙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여전히 이사들의 경영판단을 존중하면서, 다만 그 판단 과정에서 주주들의 이익이 적절히 고려되었는지를 추가로 검토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소송 현실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체계와 제도의 근본적 차이를 간과한 것입니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집단소송제도, 디스커버리 제도 등 소송을 용이하게 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러한 제도들이 제한적이거나 없습니다. 한국의 주주대표소송 제도는 남소를 방지하는 여러 안전장치를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소송 제기를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주식을 보유해야 하고, 악의적 소송의 경우 담보제공 명령이 가능하며, 패소 시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은 무분별한 소송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M&A 거래의 90%가 소송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소송이 조기에 화해로 종결되며, 실제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또한 이러한 소송 시스템이 오히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주주와 기업 간의 대화 채널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소송 이외의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상법 개정은 이러한 소통과 대화를 더욱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현재 논의되는 상법 개정안은 이미 충분히 정교하고 균형 잡힌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완벽한 제도를 만들 때까지 기다리자"는 주장은 사실상 개혁을 미루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현재의 상법 개정안은 오랜 연구와 검토,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이미 이사의 의무 범위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로 명확히 하면서도, "총주주의 이익"과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주주가 아닌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라는 것으로, 소액주주와 대주주 간의 균형을 잡은 것입니다.
개정안은 현행 제도의 틀 안에서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소송 수단을 도입하거나 기존 제도를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계 내에서 이사의 의무를 더 명확히 함으로써 예측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기업 현실을 충분히 고려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게 조정된 것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남소 방지책과 경영판단의 원칙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주관적인 것을 객관화했다"는 비판 역시 이번 상법 개정안의 가장 큰 장점을 오히려 단점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현행 상법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규정입니다. "회사를 위하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회사의 이익이라는 것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런 모호함 때문에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판단이 어려웠습니다.
이에 비해 개정안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라는 표현은 이사가 고려해야 할 대상이 명확합니다.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것은 일부가 아닌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라는 의미이며,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것은 대주주든 소액주주든 차별 없이 대우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주관적인 기준을 억지로 객관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대 기업의 본질에 맞게 이사의 의무를 구체화한 것입니다. 회사는 결국 주주들의 투자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것이며, 이사는 이러한 주주들의 신뢰를 받아 경영을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실제 경영 현장에서도 이러한 기준은 충분히 적용 가능합니다. 이사회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이 결정이 모든 주주에게 공평한가?", "특정 주주만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닌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해치지는 않는가?"를 검토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일입니다. 법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해석이 제각각이거나, 너무 엄격해서 현실에서 적용할 수 없는 법은 좋은 법이 아닙니다. 이번 개정안은 이사의 의무를 명확하게 하되,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을 단순히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 수단으로 보는 것은 매우 편향된 시각입니다. "소액주주가 어떻게 소송을 하겠느냐"는 지적은 현실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현재도 상법은 주주대표소송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6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한 소액주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승소할 경우 회사로부터 소송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도를 통해 소액주주들이 집단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 개정안은 단순히 소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를 명시함으로써, 대주주나 특정 주주의 이익이 아닌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적 장치입니다. MBK 같은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 우려는 과대평가된 것입니다. 오히려 현재의 불명확한 제도가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이사의 의무가 명확해지면 정당한 경영판단에 대한 보호도 더욱 확실해집니다.
실제로 상법 개정 이후 예상되는 변화는 소송의 증가가 아닌, 기업 경영의 질적 개선입니다. 이사회는 의사결정 과정을 더욱 체계화하고, 주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더욱 신중히 검토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더 투명하고 책임 있는 경영 관행의 정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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